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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의 봄

지금은 4월,온 나라 강산에 봄계절이 한창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대동강을 옆에 끼고있는 유서깊은 만경대에도 봄빛이 짙게 흐르고있다.

만경대는 예로부터 산천경개가 아름다와 널리 알려진 고장이다.

만경대라는 이름도 이 일대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사방 100리안팎의 일만경치를 한눈에 부감할수 있다고 하여 지어졌다.

진달래꽃,살구꽃을 비롯한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향기를 풍기는 만경대의 봄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바로 이곳에 혁명의 영원한 수령이시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신 만경대고향집이 있다.

오늘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여있는 수수한 초가집이며 쭈그러진 독을 비롯한 전시품들은 암담한 세월의 모진 고난속에서 대대로 가난속에 사신 만경대일가분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이러한 가정에서 탄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들의 혁명적교양을 받으시면서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시였으며 왜놈들을 쳐부시고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찾을 굳은 결심을 품으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4살 되시던 해에 아버님께서 일제경찰에게 또다시 체포되시였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선을 독립하고야말겠다는 굳은 맹세를 다지시며 이 작은 초가집의 사립문을 나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0성상의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을 벌리시여 마침내 조국해방의 날을 안아오신 후에야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였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땅에서 고향집사립문을 열고 들어서신분은 위대한 수령님뿐이시였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그리고 동생도 나라의 독립을 위한 길에서 돌아오지 못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향집에 돌아오시였을 때 할머니는 그이를 부둥켜안고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하며 못내 비통해하시였다. 

그때를 회고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 이렇게 쓰시였다. 

《할머니의 심정이 그처럼 비통할진대 만리타향에 무주고혼이 되여 누워있는 선친들의 유해마저 모시지 못하고 고향집사립문에 홀몸으로 들어선 내 마음이야 어떠했겠는가.

나는 그때부터 남의 집 사립문에 들어설적마다 이 사립문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몇이며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얼마일가 하는 생각을 하군 하였다. 》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나라와 인민을 위한 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아래 우리 조국은 인민이 주인된 사회주의국가로 빛을 뿌리였고 우리 인민은 존엄높고 행복한 인민으로 되였다.

하기에 우리 인민은 만경대고향집을 마음의 고향으로,혁명의 성지로 간직하고있으며 이곳을 찾고 또 찾고있다.

특히 해마다 4월이면 만경대고향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칠새 없어 이곳에는 만경대의 봄풍경과 함께 그리움의 봄풍경이 펼쳐지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영원히 높이 받들어모시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해가려는 인민의 마음과 더불어 만경대의 봄은 조선의 봄으로 빛나고있다.

본사기자 엄 영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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