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돋보이는 모습

우리가 금천골재생산사업소 소장으로 일하는 김영란을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표상은 원군미풍열성자라는것뿐이였다.

그래서 그와 마주앉았을 때에 처음으로 오간것도 원군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머니가 걸어온 원군의 길을 이어 10여년간 인민군군인들을 위한 원호사업에 지성을 다 바쳐온 김영란소장이다.

직책상 임무로 늘 바쁜 속에서도 마음속에는 조국보위초소와 사회주의건설장들마다에서 위훈을 떨쳐가는 인민군군인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고 무엇이 하나 생기면 병사들생각부터 하면서 차곡차곡 원호물자를 마련하는것이 습관으로 되였다는 그였다.

인민군군인들과 혈연의 정을 잇고 사는 그의 진정을 새겨안고 아들 선진이도 조국보위초소에 섰다.

그렇게 흘러온 김영란소장의 삶을 값높이 내세워주신분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이시다.

지난해 김영란소장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안겨주신 특별대표라는 영예를 안고 건군절경축행사에 참가하여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받아안았다.

그뿐이 아니였다.

전승 70돐경축행사에 또다시 초대되여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였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복을 쌍으로 받아안았다고 저마다 축하해주고 부러워하였다.그럴수록 그의 원군길은 더욱 잦아졌다.

사업소의 종업원들을 만나보는 과정에 우리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였다.

김영란소장이 사회주의애국공로자라는것이였다.

수도 평양을 감돌아흐르는 대동강가에서 김영란소장은 일년 열두달을 하루와 같이 일하며 사회주의건설장들에 필요한 골재를 어김없이 보장하였다.

우리 당의 숙원사업인 평양시 5만세대 살림집건설이 시작되였을 때에는 더욱 불같이 일하였다.

골재생산이 한시라도 지연된다면 그만큼 우리 당의 숙원사업이 더디여진다는 자각안고 언제나 골재장을 뜨지 않았고 우후죽순처럼 일떠서는 창조물들을 볼 때면 희열에 휩싸이군 하였다.

사업소가 오늘과 같이 생산토대를 그쯘히 갖추고 해마다 골재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없어서는 안될 단위로 명성이 자자하게 된데는 김영란소장의 헌신과 열정이 깃들어있다고 종업원들은 한결같이 말하고있다.

사업에서는 언제나 대바르고 요구성이 높으면서도 생활에서는 따뜻한 사랑과 정을 기울이는 그를 종업원들은 《우리 소장》이라고 부르며 따르고있다.

《이 나라 공민이라면 응당 할 일이라고 봅니다.》

김영란소장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길지 않은 이 말에 사회주의조국을 더욱 빛내이고 자기 사업에 대한 만족감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앞에 더욱더 성실하려는 진정이 비껴있다.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원군미풍열성자인 김영란소장이다.

글 본사기자 엄 영 철
사진 본사기자 리 광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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