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들꽃소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에 사회주의 내 조국을 굳건히 수호하시기 위해 끊임없는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면서 평범한 소녀들이 발휘한 소행을 기특히 여기시여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주신 《들꽃소녀》,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10살짜리 딸애를 가진 어머니가 되였지만 나는 오늘도 그날의 《들꽃소녀》로 불리우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장군님을 영원한 수령으로, 위대한 스승으로 받들어모시는것은 우리들의 응당한 본분이고 도리입니다.》
지금도 나의 가슴속에는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를 지키던 나날 우리 부대에 찾아오시여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주체92(2003)년 1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부대에 찾아오시였다.
부대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훈련정형과 군인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사복무의 첫걸음을 뗀데 불과한 나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나를 정겹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 동무가 바로 몇해전 어느한 부대에 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에 들꽃묶음을 드렸던 동무라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이렇게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다고 하시며 나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였다.
순간 나는 어제날 철부지소녀의 자그마한 소행도 높이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사랑에 목이 꽉 메여올랐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몇년전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외진 곳에 세워놓은 현지지도표식비앞에 희한한 꽃다발이 아니라 들판에 흔히 있는 꽃을 가지고 만든 들꽃묶음이 놓여있은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보는 순간 자신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눈물이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고,들꽃묶음을 놓은것을 보니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소행같았다고,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너무도 과분한 평가의 말씀을 받아안던 그때의 감격과 격정을 한두마디의 말로 다 표현할수 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날 나에게 앞으로 군사복무를 잘하여 훌륭한 병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뜨겁게 고무격려해주시였다.
들꽃묶음,
지금도 생각할 때면 너무도 소박한 들꽃묶음이였다.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철부지소녀들의 평범한 소행에서 변함없이 당을 따르려는 민심을 읽으시였고 인민의 그 마음을 굳게 믿으시고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끝없이 이어가신것이다.
《들꽃소녀》의 삶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자애로운 어버이로 모시여 오늘도 빛나고있다.
나는 세월이 흐르고 산천이 변하여도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대한 깨끗한 충성의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영원히 그날의 《들꽃소녀》로 살겠다.
신의주화장품공장 김 명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