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날론의 발명가 리승기선생

리승기선생은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비날론 발명가로 알려져있다.
영예의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상계관인이며 로력영웅, 인민과학자,원사,교수,박사.
리승기선생이 받은 이 모든 칭호에는 비날론의 발명과 더불어 나라의 과학기술과 화학공업발전을 위한 길에 남긴 그의 지울수 없는 자욱이 새겨져있다.
조선봉건왕조말기에 태여난 그는 이역땅에서 피타게 고학을 하면서 민족적차별과 멸시를 받았지만 그속에서도 일류급수재로 이름을 날리였다. 기어이 학문으로 조선사람의 슬기와 본때를 보일 민족적자존심과 과학적야심을 안고 연구사업에 전심해온 그는 30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폴리비닐알콜계합성섬유인 비날론을 발명하는 특출한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과학을 해도 조선사람을 위한 과학을 하려는 리승기선생의 꿈과 리상을 활짝 꽃피워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온 리승기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 가렬처절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비날론연구사업을 마음껏 해나갈수 있었으며 마침내 자기의 오랜 숙망을 실현할수 있었다.
리승기선생의 연구사업에 기초하여 매장량이 풍부한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하여 비날론을 생산하는 2.8비날론공장(당시)이 일떠서게 되였다.그후 그는 비날론의 질을 높이고 품종을 늘이기 위한 연구사업을 계속하였으며 과학연구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리승기선생은 평소에 과학연구사업에서 이룩한 자기의 모든 성과에 대하여 천부의 재능과 열정의 귀결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대한 태양의 품,은혜로운 조국의 품이 아니였다면 자기의 값높은 인생에 대해 생각할수 없다는것을 실생활체험으로 터득한 그였다.
그는 여러기에 걸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사업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1961년 2월부터 1996년 2월 생의 마지막까지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원장으로 사업하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