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 죄악

조선민족앞에 저지른 일제의 과거범죄들중에는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 죄악도 있다.
《한일합병조약》은 국가적실체로서의 조선을 없애버리고 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날조한 불법무법의 《조약》이며 협잡문서이다.
《을사5조약》날조후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한편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각 방면에서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철저히 예속시키기 위한 책동에 광분하였다.
이런 속에서 헤그밀사사건이 일어나자 일제는 이를 구실로 《정미7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의 내정권을 강탈하고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은 일제는 1909년에 들어와 형식상 존재하던 조선봉건국가마저 완전히 없애버리고 조선을 저들의 철저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악랄하게 날뛰였다.
당시 일본외상은 조선《합병》과 관련한 초안을 작성하여 수상 가쯔라에게 극비로 제출하였으며 가쯔라는 이 문제를 가지고 정계의 우두머리들과 비밀모의를 가졌다.여기에서 이자들은 조선을 적당한 시기에 《합병》할데 대한 의견일치를 보았다.
1910년 5월 일제는 악명높은 륙군대신 데라우찌를 3대 조선《통감》으로 임명하였다.군부출신의 깡패인 데라우찌의 《통감》임명은 조선을 군사적위협과 공갈로 《합병》하겠다는것을 공공연히 선포한것이나 다를바 없었다.
일제는 헌병과 경찰인원을 증강하여 우리 나라를 헌병,경찰망으로 뒤덮었다.각 도에 헌병대를 설치하고 일본헌병대장이 경찰들까지 총지휘하도록 하였다.중요한 지점들에는 곳곳에 초소를 배치하였다.
일제는 특히 한성에 저들의 무력을 조밀하게 배치하여놓았다.놈들은 한성봉쇄음모를 여러차례 벌리고 무력을 은밀히 집결시켜놓았다.그리하여 한성에는 포병,공병부대들을 포함하여 수천명의 무력이 집결되였다.
조선황궁과 대신들의 집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였으며 사람들의 모임은 물론 신문과 잡지 등 언론이 철저히 단속되였다.《합병》을 전후한 시기에는 《합병》을 반대할 기미가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련행하였으며 심지어 한성시내에서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아도 구속되였다.
이렇듯 무시무시한 폭압분위기를 조성해놓은 일제는 1910년 8월 22일 끝끝내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였다.일제는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놓고도 조선인민의 폭발적인 반일투쟁이 두려워 29일에야 그것을 공포하였다.
《한일합병조약》은 말그대로 일제가 무력과 강권을 총발동하여 감행한 특대형국권강탈행위였다.
일제가 《한일합병조약》을 내들고 국가적실체로서의 조선을 완전히 없애버렸지만 사실상 이 《조약》은 강제적방법으로 날조된 불법무법의《조약》이였다.
당시에 널리 적용되던 《만국공법》 제409장에는 《만일 다른 사람의 협박을 받아 자유가 없이 한것이라면 그 조약은 다 페지할수 있다.》라고 규정되여있었다.
《한일합병조약》의 비법성은 또한 그것이 순종황제의 비준을 받지 못한것이라는데 있다.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과 함께 《조인》된 《각서》에서는 쌍방이 《병합조약》 및 순종황제와 일본왕의 조칙을 동시에 공포할것이라고 밝혔다.그러므로 1910년 8월 29일에 공포된 《병합》을 알리는 순종황제의 칙유문은 그의 비준서에 해당하는 문건이라고 말할수 있다.그러나 순종황제의 칙유문은 일제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문건으로서 여기에는 어새만 찍혀있을뿐 순종황제의 서명은 없다.반면에 같은 날에 공포된 왜왕의 조칙문에는 어새와 함께 서명이 기재되여있다.이것은 순종황제가 일제의 조선《병합》을 반대하여 칙유문에 서명하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준다.실지 1926년 순종황제는 지난날의 《한일합병》의 인준은 내가 한바는 아니다,《문서》의 조작당시 일제는 나를 유페하고 협박했다고 고발하였다.
이처럼 《한일합병조약》은 그 어떤 법적타당성도 찾아볼수 없는 불법무법의 날조품이였다.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야만적인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여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을 강요하였다.장장 수십년간에 달하는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치떨리는 노예생활을 강요당하며 고통속에 몸부림쳤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하였지만 우리 인민은 일제가 저지른 만고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고있다.
일본은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절대로 피할수 없는 법적,도덕적의무라는것을 똑바로 알고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만고죄악에 대해 철저히 사죄,배상해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심 태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