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영화계의 명성높은 배우-김정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작가,예술인들의 삶의 보람과 행복은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에게 복무하는 참다운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는데 있습니다.》
우리 나라 영화계에서 명배우로 널리 알려진 재능있고 열정적인 김정화동무,
우리 인민들은 자기의 독특하고 매혹적이며 세련된 연기로 우리 영화예술을 풍만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온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있다.

인민들로부터 받은 애칭-《김순희》

지금도 우리 인민은 그에 대해 말할 때면 본명대신 김순희라고 부르고있다.
아마도 김정화라고 하면 첫 순간엔 기억을 더듬을지 몰라도 김순희라고 하면 대뜸 알아맞힌다.
다부작예술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의 녀주인공 김순희를.
다부작예술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은 그에게 있어서 영화배우계에 들어서자마자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인 동시에 《김순희》라는 애칭과 함께 불리우게 한 첫 작품이였다.
이제는 이 영화가 나온 때로부터 어언 40년을 앞에 두고있지만 오늘도 사람들은 김순희의 매혹적인 역형상을 하나하나의 세부장면과 함께 방불히 그려보고있다.
그의 연기형상에서 절정을 이루는 남주인공과의  《마돈나》다방접선장면과 교활하고 악랄한 원쑤들과의 대결장면,놈들의 검토를 슬기로운 예지로 물리치는 장면 등은 오늘도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고있다.
순희는 왜 죽어야 하는가?왜 죽이였는가?
이것이 당시 순희의 죽음을 원치 않는 인민들의 심정이였고  그토록 영민하고 용감하며 사랑스러운 순희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표현이였다.
어느 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방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순희의 희생장면앞에서 너무도 격한 나머지 《야,이놈아,쏘지 말라.》고 웨쳤다는 이야기도 이때 생겨났다.
그때부터 김정화 그 자신은 일약 일류급명배우들과 어깨를 겨루기 시작하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것은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당시 25살이였던 김정화동무는 그후 인민들속에 《순희》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며 《돌아오지 않은 밀사》,《나의 행복》,《림꺽정》,《효녀》,《민족과 운명》 등 60여편의 예술영화들에 출연하여 하나같이 진실한 체험연기,깊이있는 심리연기로 관중의 심금을 틀어잡았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

《내가 본 나라》

김정화동무가 영화배우생활기간에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는  《내가 본 나라》이다.
이 영화는 외국의 어느 한 탐방기자가 우리 나라의 현실을 제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면서 위대한 당,위대한 수령의 품속에서 개화만발하는 사회주의 우리 제도에 대해 감복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김정화동무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자신이 겪은 생활에 대한 체험연기였다.
역형상과정은 그대로 그 자신이 안겨사는 사회주의조국,그 품에서 누려온 참된 삶과 행복에 대한 진정의 토로과정이였다.
영화배우가 될것을 그토록 갈망하던 학창시절의 작은 가슴에 희망의 나래를 달아주고 대학공부까지 시켜준 고마운 사회주의조국,
그 고마운 조국은 곧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이였다.
그의 성장과정은 결코 천성과 소질에 따른것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들의 따뜻한 손길에 의한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학을 졸업한지 한달도 못되는 그에게 다부작예술영화의 녀주인공역을 맡겨주시고 그의 자그마한 연기성과를 두고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한량없는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매 작품에서 연기형상을 로숙하고 세련되게 할 때마다 심리연기를 잘하는 사색적인 배우,조선의 녀배우들중에서 제일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중의 한명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신분도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그는 지금도 언제인가 어느 한 영화의 주역을 담당했을 때 갑자기 중병으로 쓰러졌던 자신을 영화촬영을 림시 중단하면서까지 외국에 보내여 치료를 받도록 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대해 감회깊이 회상하군 한다.
당의 손길아래 인민의 사랑받는 명배우로 성장하던 나날에 그는 《김일성상》계관인으로,인민배우로 자라났으며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하여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하기에 마지막으로 출연한 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에서 그의 역형상은 그대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꽃피워주는 위대한 우리 당에 대한 흠모와 감사의 고백이였다.
낳아준 어머니의 사랑은 한대에 머무른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김정화동무에게도 위대한 장군님의 손길 그대로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따사로운 사랑의 해빛이 흘러들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배우생활을 마치게 된 김정화동무의 소망을 헤아려 평양연극영화대학의 교단에 서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뿐이 아니다.
6년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아안았을 때에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그대로 흘러드는 감격과 행복감으로 시종 얼굴을 적시였다고 한다.
하기에 김정화동무는 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로 자기의 배우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의 시작도 끝도 다 맡아 보살펴주고 빛내여주는 위대한 어버이품에 대한 그의 열렬하고 진실한 체험연기는 계속되고있다.

이어가는 참된 삶

오늘 평양연극영화대학에 가면 강좌장으로 사업하고있는 김정화동무를 볼수 있다.
40여년만에 정다운 모교에 들어설 때 그의 심정은 참으로 감개무량하였다.
그사이 많은것이 변하였지만 희망과 꿈을 담아싣던 책상이며 칠판은 예전 그대로인듯싶었다.
그는 우리 나라 영화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학생들을 위해 바쳐가는 삶을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평범한 한 공민의 량심과 의리로 간주하고있다.
학생들의 연기형상지도를 위해 교수안작성에 품을 들이고있으며 기량발표회에도 자주 출연하고있다.
《인민의 사랑받는 명배우,이것은 동무들의 꿈이다.그 꿈은 절로 성취되지 않는다.고마운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을 심장으로 사랑해야 한다.우리 인민의 감정정서를 온넋으로 안아야 한다.피타는 노력과 열정을 깡그리 바쳐야 한다.》
이것은 그가 학생들앞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학생들은 김정화동무가 교단에 설 때마다 그의 강의에 푹 빠져들고있으며 그처럼 제2의 순희가 될것을 꿈꾸고있다.
커가는 그들의 꿈과 함께 김정화동무의 삶도 빛나고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오늘도 《김순희》라는 애칭을 정답게 떠올리군 한다.

본사기자 엄 영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