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이름난 화가 김홍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김홍도는 18세기 후반기의 사회현실과 인민들의 미적지향을 아름다운 필치를 통하여 진실하게 반영함으로써 중세 우리 나라 회화미술을 한층 높은 단계에로 올려세운 대표적인 사실주의화가의 한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공부에 열중하여 10살때 벌써 뛰여난 재능을 나타냈고 20살이전에 도화서의 화원으로 되였다.
김홍도는 인물,산수,화조 등 여러가지 그림에 모두 능숙하였는데 그가운데서도 뛰여난 자질과 원숙한 화법을 유감없이 발휘한 분야는 인물화 특히는 풍속화분야이다.그는 당대의 사회생활을 폭넓게 담으려고 꾸준히 탐구를 거듭하여 인물풍속화분야를 개척함으로써 우리 나라 회화사에서 풍속화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집짓기》,《대장간》,《서당》,《마당질》,《씨름》,《물고기잡이》,《밭갈이》,《천낳이》(베짜기),《빨래》 등 사회생활을 다방면적으로 반영한 인물풍속화들은 김홍도의 진보적인 사실주의적창작태도와 예술적재능을 훌륭히 보여주고있다.
김홍도는 또한 풍경화들과 화조,동물을 반영한 그림을 많이 그리였는데 《숲속의 달밤》,《파도》 등 풍경화들에서는 조국의 아름다움을 재치있게 형상하였고 《개》,《늙은 사자》,《표범가죽》 등에서는 동물의 특징과 털의 질감을 생동하게 그려냈다.자그마하고 평범한 소재를 통해서도 풍부한 정서와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들은 어느것이나 정확한 소묘와 기발하고 표현적인 화면구성,성격의 개성화,대상에 적응한 선들의 변화,힘있고 아름다운 필치가 아주 특징적이다.
그러나 그는 도화서의 화가로서 지배계급의 비위에 맞는 화상과 궁중생활,신선 등을 그린 시대적제한성을 면할수 없었다.그런 경우에도 그는 도식과 규범에 구애됨이 없이 현실생활 및 인간들의 성격과 심리를 진실하게 그리려고 노력하였다.그리하여 김홍도는 18세기 후반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화단에서 대표자로 되였으며 그의 화풍은 그후 회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김 명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