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와 배상은 절대로 회피할수 없는 일본의 책임

가없이 맑고 푸른 조선동해를 사이에 두고 조선과 일본이라는 나라가 서로 이웃하고있다.상식적으로 놓고보면 두 나라 관계는 좋아야 하겠으나 그렇지 못하고있다.세상사람들이 말하듯이 두 나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로 되여있다.
력사적으로 볼 때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대대로 일본은 우리 나라를 적대시하고 조선민족에 대해 온갖 못된짓을 다한 나라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를 략탈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나중에는 우리 나라를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타고앉기 위하여 천인공노할 만행들을 수많이 감행하였다.
1894년 7월 23일에 감행한 조선왕궁에 대한 습격사건도 그중의 하나이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확대되자 일본침략자들은 일본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조선에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들이밀었다.그리고는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 흉계밑에 우리 나라에서 청나라군대를 철거시키며 청나라와 체결한 모든 조약과 협정들을 페기할것을 조선봉건정부에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조선봉건정부는 조선의 내정과 외교문제는 자기의 권한에 속하는것이라고 일본측의 강도적요구를 단호히 일축해버리였다.
그러자 일본침략자들은 날로 강경해지는 조선에 친일정부를 조작하고 조선봉건정부로 하여금 일본에 청나라군대를 조선밖으로 철수시킬 요청서를 내게 하도록 할 목적으로 조선왕궁에 대한 습격사건을 조작하였다.
1894년 7월 23일 새벽 일본공사관에 둥지를 틀고있던 일본침략군 제5사단 혼성려단장 오시마는 보병 제11,21련대를 주력으로 하고 기병중대,야포중대,공병중대들을 인입한 총 8 000명에 달하는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왕궁을 포위공격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왕궁의 성벽을 넘어들어와 왕궁호위병들을 살해한 다음 성문을 열어제끼였다.
왕궁내의 조선병사 500여명은 침략군과의 결사전을 벌렸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침략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왕궁을 점령한 일본침략자들은 국왕과 왕비를 연금하고 조선봉건정부의 대신들마저도 왕궁출입을 금지시켰으며 동시에 주요기관들을 장악하였다.또한 수백년간 귀중히 보존해온 왕궁의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들을 파괴략탈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이어 한성시내의 조선군대병영을 점령하고 무장을 해제시켰다.
조선왕궁습격사건후 일본침략자들은 대원군을 강제로 정권에 들여앉히고 조선봉건정부로 하여금 청나라와 체결한 모든 조약을 강제로 페기하도록 하고는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다.그리하여 조선전지역은 청일간의 침략전쟁마당으로 화하게 되였다.
이처럼 조선왕궁습격사건은 일본침략자들이야말로 저들의침략적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주권국가에 대한 테로행위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는 가장 파렴치한 범죄자들이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이후에도 일본침략자들은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명성황후살해사건을 비롯한 천추에 용납못할 살인귀적만행들을 수없이 감행하였으며 온갖 비법,불법의 문서들을 조작하여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민족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다.
이렇듯 전대미문의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일본은 사죄와 배상은커녕 저들의 죄과를 가리워보려고 갖은 모략을 다 꾸미고있다.최근에는 과거를 청산할데 대한 조선민족의 정당한 요구에 그 무슨 경제보복조치라는것으로 대답해나서는 파렴치한 망동을 부리고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는 가해자가 도리여 피해자에게 삿대질하는것으로서 인간세계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파렴치의 극치이다.일본의 도덕적수준은 이렇듯 란폭하고 정상한계를 훨씬 벗어났다.
이것은 일본반동들스스로가 저들이 인간사회에서 살 자격을 상실하였다는것을 드러낸것과 다를바 없다.
일본이 과거청산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발악할수록 조선민족의 대일증오심은 더욱 세차게 끓어번지고있으며 보복의지는 천백배로 다져지고있다.
일본은 명심하여야 한다.제아무리 발버둥질쳐도 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가리울수 없으며 일본은 사죄와 배상의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다.

본사기자  로 미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