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의 원대한 뜻을 지니시고
봉화혁명사적지를 찾아서

오늘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탄생하신 125돐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는 얼마전 유서깊은 봉화혁명사적지를 찾아 기행의 길에 올랐다.
새라새롭게 변모되는 조국의 모습을 차창에 비껴안고 힘차게 달리던 승용차는 어느덧 봉화혁명사적지마당에 이르렀다.
봉화혁명사적지에 들어선 우리는 먼저 명신학교앞마당에 모셔진 김형직선생님의 동상을 찾았다.
소박한 조선옷차림에 한손에는 책을 펼쳐드시고 다른 한손으로는 교탁을 짚으신 김형직선생님의 동상을 우러르느라니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글줄이 눈앞에 어려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의 한사람으로서 1894년 7월 10일에 만경대에서 탄생하여 1926년 6월 5일 망국의 심야에 한을 품고 돌아갈 때까지 일생을 혁명에 바친분이였다.》
김형직선생님의 동상앞에서 선생님의 빛나는 업적을 돌이켜보는 우리에게 강사 주혜경동무는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찌기 지원의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투쟁의 길에 나서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리실 구상밑에 혁명활동중심지를 강동군 봉화리로 정하시고 이곳에 오시여 애국적인 교육활동과 동지규합,광범한 인민대중을 계몽하는 사업을 힘있게 벌려나가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봉화리에서 후대교육사업에 힘쓰시는 한편 강동,순천,평양,청수,창성,은률 등지에서 활동하시면서 지하혁명조직결성사업을 밀고나가신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으며 우리는 명신학교로 걸음을 옮기였다.
칠판,교탁,책상,벽시계,종 등 모든 사적물이 옛모습그대로 보존되여있는 교실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것은 김형직선생님께서 써붙이신 지원이라는 글발이였다.
지원,
얼마나 숭고하고 깊은 뜻이 담겨져있는 사상인가.
김형직선생님께서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셨던 지원의 사상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는 혁명적인생관이며 대를 이어가며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해방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였다.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지원의 높은 뜻을 가슴에 새기는 우리의 귀전에는 김형직선생님께서 몸소 지으신 《명신학교교가》의 구절구절이 울려왔다.
기울어진 나라의 운명을 구원하고 조국해방을 이룩하려는 불타는 념원과 지향을 지니시고 후대들을 훌륭한 인재로 교양육성하시려는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애국사상이 맥맥히 흘러넘치는 《명신학교교가》를 되새기며 우리는 학교뒤에 있는 한채의 살림집앞에 이르렀다.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어머님의 체취가 그대로 어려있는 키낮은 책상과 농,부엌세간들을 볼수록 우리의 마음은 한없는 격정으로 설레였다.
강사는 우리에게 김형직선생님께서 봉화리에 오시여서도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시며 혁명조직결성을 위한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시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살림집뒤에 있는 바위우에 올라서니 나무굴뚝옆 지붕우에 흰줄로 삼각표식을 한것이 보이였다.김형직선생님께서 비밀문건을 보관하셨던 장소였다.
그 위치도 언제인가 봉화혁명사적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증해주시였다고 강사는 말하였다.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의 투쟁이야기를 깊은 감명속에 되새기며 우리는 박우물과 봉화리에 오신 김형직선생님께서 두번째로 계시면서 혁명활동을 벌리신 집을 돌아보고 봉화산으로 올랐다.
봉화산,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외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하여 봉화를 지펴올리던 곳이라는데로부터 유래된 그 이름이 언제부터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소중히 자리잡았던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발자취가 새겨진 력사의 그날부터였다.
나라의 독립과 무산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력사의 새벽길을 걸으시며 자주독립의 불길을 지펴올리신 김형직선생님의 불멸의 업적과 더불어 봉화산은 우리 천만군민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되여 빛나는것이 아니랴.
그래서인지 봉화산의 한그루의 나무도,한포기의 풀도 무심히 대할수 없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학생들의 체력을 단련시키시던 아침운동터를 지나 산중턱에 이르니 바위터가 나졌다.
사연깊은 바위터를 바라보느라니 조선국민회가 결성되던 잊지 못할 그날이 떠올랐다.
주체6(1917)년 3월 23일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오래동안에 걸치는 면밀한 준비에 기초하시여 평양 학당골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몸소 결성하신 조선국민회,그것은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시려는 김형직선생님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마련된 고귀한 결실이였으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다.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신 다음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몇달후에 조선국민회 구역장,통신원,련락원들의 비밀모임을 바위터에서 진행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모임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한 후의 사업정형을 총화하시고 조직을 국내외도처에 본격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모임을 마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동지들을 여러곳으로 떠나보내시는 한편 자신께서도 조선국민회조직의 확대강화를 위해 험난한 투쟁의 길을 걸으시였다.
김형직선생님의 혁명활동업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비석계의 계원들은 선생님께서 봉화리를 떠나신지 11년이 되는 해인 주체17(1928)년 6월 비석산기슭에 비석계의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맨 웃자리에 계의 조직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의 존귀하신 성함이 모셔져있었으며 비석계 계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깊은 감동속에 기념비를 돌아본 우리는 맥전나루터로 향하였다.
강사는 우리에게 김형직선생님께서 봉화리에 오실 때와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평양으로 이송되실 때 그리고 봉화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는 기간 평양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혁명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다니실 때 여기 맥전나루터에서 강을 건느시였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깊은 감동속에 맥전나루터를 돌아보며 우리는 대동강을 바라보았다.
강의하고도 억센 기상을 안으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조선국민회의 확대강화를 위하여 이 강을 그 얼마나 많이 넘나드시였던가.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대동강은 조선의 독립과 겨레의 해방을 위하여 력사의 새벽길을 헤치신 김형직선생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하며 끝없이 출렁이고있었다.
대를 이어 억세게 계승되는 혁명위업,그 위대한 전진을 가로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는것을 확신하며 우리는 봉화혁명사적지를 떠났다.

본사기자 한 철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