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통해 보는 조선의 국화 목란꽃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목란꽃은 우리 인민이 제일 사랑하는 국화입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여온 우리 인민의 귀중한 문화유산들가운데는 꽃문화도 들어있다.
우리 민족의 아름답고 고상한 꽃문화의 갈피마다에는 우리 나라의 국화인 목란꽃도 새겨져있다.
목란꽃은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함박꽃나무,목련화(련꽃과 같은것이 나무에 핀다는 뜻)등의 이름으로 널리 불리워왔다.
목란과 목란속에 속하는 식물들의 자취를 더듬어보면 그것은 인류발생의 첫 시기인 구석기시대부터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있다.
구석기시대 유적들인 검은모루유적과 대현동유적,중리동굴유적,제남동굴화석산지를 비롯한 여러 유적에서는 여러가지 식물포자화분들과 함께 목란속에 속하는 포자화분들이 발견되였다.인류발전의 첫 시기인 구석기시대 유적들가운데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검은모루유적을 비롯한 이 시기 여러 유적에서 목란과 목란속에 속하는 포자화분들이 발견된것은 목란속식물들이 이미 100만년전 이전 시기부터 우리 나라에서 널리 자라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15세기 이름있던 학자이며 화가였던 강희안(1417-1464)은 자기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여러가지 아름다운 꽃들의 생태학적특성과 그 재배기술을 소개하면서 그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들을 골라 그 품계를 정하였는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꽃들과 함께 목련화에 대한 내용도 서술되여있다.
이러한 원예서적에 목련화가 제일로 아름다운 꽃들중의 하나로 기록되였다는것은 예로부터 우리 인민이 이 꽃을 남달리 사랑해왔다는것과 함께 우리 인민들의 정서생활속에서 목련화가 차지하는 지위를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봉건관료이며 학자였던 권문해(1534-1591)는 1589년 (선조22년)에 분류사전형식으로 편찬한 《대동운부군옥》(20권 20책)에서 김시습의 목련화에 대한 평가를 서술하였는데 그것을 보면 잎은 감나무와 같고 꽃은 하얀 련꽃과 같으며 종자집은 도꼬마리열매와 같은데 홍산사람들은 이름을 목련이라고 한다고 그 형태적특징을 밝히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출판)의 개성부편에는 《여름이면 록음이 우거진 속에 목련화가 피여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른다.》고 기록되여있다.
이러한 력사자료들을 통하여 우리는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이 목란꽃을 사랑해왔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본사기자  리  철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