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개가 높이 울린 간삼봉전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지난 항일혁명전쟁과 조국해방전쟁에서 수적으로,기술적으로 우세한 제국주의강적들을 정치사상적,전략전술적우세로 타승하심으로써 강철의 령장,탁월한 군사전략가,반제투쟁의 승리의 상징으로 세상사람들의 다함없는 칭송과 신뢰를 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간삼봉계선에 이른것은 주체26(1937)년 6월말경이였다.
이때 사령부로 일제의 함흥 제74련대가 수십대의 자동차를 타고 혜산방면으로 밀려들어 신파쪽에서 압록강을 건넜다는 긴급한 통보가 들어왔다.
적들의 력량은 유격대보다 훨씬 우세하였다.
사실 적이 대부대로 공격해오면 재빨리 분산하여 기동전을 벌리는것이 유격전의 일반적인 전술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군 대부대와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팔반도로 향하던 행군을 일단 멈추고 싸움터를 고르시였다.
싸움터로는 간삼봉이 제일 적당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회의를 여시고 이번 전투에서 적의 정규전법에 말려들지 말고 유격전법을 주동적으로 활용할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그러자면 인민혁명군부대들이 먼저 산릉선을 차지하고 적들이 골짜기에 몰리게 유도하며 부대배치에서도 도식을 범하지 말고 적들이 유격대가 주의를 덜 돌릴것이라고 볼수 있는 곳에 력량을 많이 배치하고 전투과정에 부대들이 수림을 리용하여 좌우로 빨리 기동하면서 림기응변하도록 할데 대한 전투방안을 내놓으시였다.
6월 30일 아침 적들이 간삼봉으로 공격해왔다.
적들은 파도식으로 계속 달려들었다.
유격대가 기관총을 10여정이나 배치하고 전방을 탄막으로 뒤덮는데도 적들은 새까맣게 달려들었고 이런 공격을 종일토록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유격대도 힘든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떤 곳에서는 적이 아군진지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육박전까지 벌려야 하였다.거기에 비까지 계속 내려 전장은 더 처참하였다.
바로 이때 녀대원들이 싸움을 하면서 부르는 《아리랑》의 노래소리가 고지에 울려퍼졌다.
이 노래는 유격대원들의 전투사기를 무한히 북돋아주었으며 적들을 위압하고 공포에 질리게 하였다.
적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저녁때가 되도록 폭우속에서 공격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런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찰임무를 받고 팔반도쪽에 나갔던 소부대와 식량공작조에 련락하여 적의 뒤통수를 때리게 하시였다.
적들은 앞뒤에서 얻어맞을 위험이 생기고 날까지 어두워지자 200명가량밖에 안되는 패잔병들을 모아가지고 도망치고말았다.
간삼봉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전투가 있은 다음날 적들은 혜산,신파와 간삼봉부근에 있는 마을들에서 담가와 우마차,자동차를 징발하여 시체운반을 하였다.
적들은 시체마다 흰광목을 덮어놓고 사민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단속하였다.
그것은 저들의 패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것이 제일 두려웠기때문이였다.
적들이 유격대를 치겠다고 신파에서 압록강을 건너올 때에는 하루종일 걸렸는데 다시 건너갈 때는 반시간 남짓하게 걸렸다.
사상자수가 어찌나 많았던지 시체에서 머리만 잘라서 마대나 나무상자에 넣어가지고 우마차에 실어 자동차가 있는데까지 날랐다.
시체운반에 동원된 일본군병사에게 어떤 농민이 시치미를 떼고 《달구지에 싣고가는게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일본군병사는 능청스럽게 《가보쨔》라고 대답하였다.
호박이라는 뜻이였다.
농민은 싱글벙글 웃으며 《가보쨔농사가 대풍이군요.좋은 국거리니 많이들 자시우.》 하고 야유하였다.
그때부터 항간에서는 《호박대가리》라는 말이 생겨났고 인민들은 일본군시체만 보면 《호박대가리》라고 풍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휘하신 간삼봉전투는 이처럼 인민들에게는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고 원쑤들은 공포에 전률케 하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