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천기슭을 진감시킨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십니다.》
주체45(1956)년 6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첫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단을 이끄시고 유서깊은 혁명전적지 보천보에 도착하시였을 때였다.
마중나온 군의 일군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숙소에서 피로를 푸신 다음 답사를 진행했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적지를 답사하러 왔는데 어떻게 오자마자 쉬기부터 하겠는가고,가림천기슭에 모신 수령님의 동상부터 먼저 찾아가보겠다고 하시며 먼길에 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몸소 대오를 이끄시고 가림천기슭으로 향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답사생들에게 우리는 보천보혁명전적지에 구경이나 하자고 온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학습하기 위하여 이곳에 왔다고 말씀하시였다.
혁명전통,
아직은 이 네글자에 담겨진 심오한 뜻을 다는 리해할수 없는 답사생들이였지만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자기들이 무엇때문에 백두산지구에 오게 되였는가를 깊이 느끼게 되였다.
답사생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앞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드리시였다.
백두의 험산준령을 넘나드시던 그날의 모습 그대로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르는 답사생들은 이곳에서 멸적의 총성을 울리시여 겨레의 가슴에 조국해방의 서광을 안겨주시고 인민들을 항일성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안겨와 숭엄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이때 한 학생이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선창을 떼였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오직 위대한 수령님만을 굳게 믿고 수령님께 일편단심 충정다할 결의를 다지며 답사생들은 불멸의 혁명송가를 소리높이 불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는 가림천기슭을 진감하였다.
그 시기로 말하면 우리 혁명력사에서 참으로 준엄한 시기였다.
이 시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어째보려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하여 백두산지구의 혁명전적지들은 잘 꾸려지지 못했고 그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사업도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학교들에서도 명승고적탐승과 등산,야영 같은것은 많이 조직하였지만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답사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력사의 땅 보천보에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울려퍼진것은 참으로 비상한 의미를 가지였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첫 답사,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이어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숭고한 사명감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이 단행하실수 있는 력사의 장거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가 끝나자 답사생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돌아보시였다.
력사의 그날 조선의 밤하늘을 조국해방의 홰불로 환히 밝히시며 보천보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답사생들의 가슴마다에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선률이 더욱 숭엄히 울리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에로의 첫 답사행군대오를 이끄시고 보천보를 찾으신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오늘도 이곳을 찾는 답사생들이 부르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백두의 혁명전통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우리 혁명의 명맥으로 굳건히 이어지고있음을 똑똑히 보여주며 보천보의 하늘가에 끝없이 울려퍼지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