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보에 타오른 민족자주의 불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지휘하신 력사적인 보천보전투가 있은 때로부터 어느덧 80여년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오늘도 보천보의 불길은 천만군민의 심장속에 승리의 표대로,조선인민의 불굴의 정신력의 상징으로 간직되여있다.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승리 82돐을 맞이하는 천만군민은 자기 조국과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침략자들과는 끝까지 맞서 싸우는 조선혁명가들의 불굴의 정신과 영웅적기개를 높이 떨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며 백두의 혁명전통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사회주의조선의 백승의 력사를 더욱 빛내여갈 불타는 결의에 충만되여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항일혁명전쟁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주적인 혁명로선과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결실입니다.》
보천보는 조국의 북변에 위치하고있는 크지 않은 시가였다.
하다면 80여년전 보천보의 불길이 온 삼천리강토를 그처럼 크나큰 희망과 환희로 끓어번지게 한것은 과연 무엇때문이였던가.
그것은 보천보의 불길이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 신음하던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조국해방의 서광을 안겨주고 죽어도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개를 보여주었기때문이다.
조선의 아름다운 산천을 짓밟고도 모자라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 지어 조선말까지 없애기 위해 미쳐날뛴 일제의 책동이야말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잔악한것이였다.
더우기 1930년대 중엽에 들어와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책동은 극도에 달하였다.
하기에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신음하던 우리 인민은 민족의 존엄을 되찾을 날을 일일천추로 갈망하고있었다.
조선민족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조선민족은 자기의 말과 글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것,조선민족은 《내선일체》와 《동조동근》을 인정하지 않으며 《황민화》를 거부한다는것,조선민족은 일본이 망할 때까지 손에서 무장을 놓지 않고 항쟁을 계속한다는것을 보여주자.
민족자주의 신념과 필승의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부대의 력량으로 국내에 진공하여 보천보를 들이칠 결심을 하시였다.
보천보는 적들의 중요군사요충지였고 국경일대에서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략탈의 중심지들중의 하나였다.
보천보를 치면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신심을 안겨줄뿐만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과시할수 있었다.
주체26(1937)년 6월 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 보천보에로 진격할데 대한 전투명령을 내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지양개를 떠난 주력부대는 6월 3일 밤 구시물동에서 떼목으로 압록강을 건는 다음 보천보의 뒤산인 곤장덕에 올라 숙영하였다.
6월 4일 날이 어두워지자 부대는 곤장덕을 내려 은밀히 보천보시가에 접근하여 각기 지정된 위치를 차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림천기슭에 서있는 황철나무아래에 지휘처를 정하시였다.
지휘처에서 경찰관주재소까지의 거리는 100m안팎이였다.
밤 10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권총을 높이 드시고 방아쇠를 당기시였다.
10여년세월 조국의 동포들에게 전하고싶었던 모든 사연이 그 한방의 총성에 담겨 밤거리에 울려퍼졌다.
때를 기다린듯 일제원쑤들을 격멸하는 복수의 몰사격이 일제히 터졌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불의타격에 혼비백산한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살구멍을 찾으려고 헤덤벼쳤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드센 공격에 경찰관주재소가 들부셔지고 면사무소,우편국,산림보호구,소방회관을 비롯한 적기관들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온 거리는 불바다가 되여 대낮처럼 밝아졌다.
여기저기에서 인민들이 달려나왔다.정치공작원들이 뿌린 삐라와 격문들을 본 인민들은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폭압과 만행의 아성을 분노의 활화산마냥 통채로 집어삼키며 세차게 타오르던 그날의 보천보의 불길을 그려볼수록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이 메아리쳐온다.
거세차게 타번지는 저 불길은 놈들의 최후를 보여주고있다고,저 불길은 우리 민족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날강도 일제놈들과 싸우면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고있다고,저 불길은 학대와 주림속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희망의 서광으로 빛날것이며 투쟁의 불씨로 되여 온 삼천리강토에 퍼지게 될것이라고 힘있게 선언하신 위대한 수령님.
백두의 뢰성마냥 밤하늘가에 울려퍼진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던 보천보인민들을 무한히 격동시켰다.
인민들이 터치는 만세소리와 더불어 보천보의 불길은 어둠을 밝히며 더욱 활활 타올랐다.
정녕 어둠의 장막을 찢어발기며 활활 타번진 보천보의 불길은 아시아의 제왕처럼 행세하며 조선민족을 억압하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안기고 식민지노예의 악몽속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의 넋에 재생의 활력을 북돋아준 민족자주의 불길,승리의 불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우리는 보천보전투를 통하여 일제란 칼로 내려치면 동강이 나고 불을 지르면 짚검불이나 북데기처럼 타번지는 일종의 페기물같은 존재라는것을 보여주었다,해와 달도 빛을 잃어가던 조국땅에 있어서 보천보 밤하늘에 타오른 불길은 민족의 재생을 예고하는 서광이였다고 쓰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타격에 얼이 빠진 일제침략자들은 《후두부를 꽝 하고 강타를 당한것 같다.》,《천날동안 베여들인 새초를 한순간에 태워버린듯 한 한을 남겼다.》고 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일제가 재더미로 변한 통치기관들을 한탄속에 바라보며 저들의 멸망을 예감하고있을 때 우리 인민은 민족의 태양을 높이 모신 끝없는 긍지와 조국해방에 대한 희열로 가슴 들먹이였다.
그때 서울에서 《중앙일보》사장을 하던 려운형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보천보를 들이쳤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격동되여 그달음으로 전투현장인 보천보로 달려가보고 《이제는 됐구나,단군조선이 살아있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상해림시정부의 김구도 보천보전투소식을 듣고 어찌나 흥분했던지 창문을 열어제끼고 배달민족은 살아있다고 몇번이나 웨쳤다.그는 이제는 림시정부가 김일성장군을 후원해야겠다고 하면서 백두산쪽으로 사람을 보내여 위대한 수령님과 련계를 맺으려고까지 하였다.
보천보전투를 빛나는 승리로 결속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추격해오는 적들을 다시한번 족쳐버릴 통쾌한 작전을 펼치시여 구시산전투와 간삼봉전투를 또다시 대승리에로 이끄시였다.
보천보전투에 이어 구시산전투와 간삼봉전투의 승전소식은 삼천리강토를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보천보전투가 있은 후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아래 조국해방을 위한 성전에 과감히 떨쳐나섰고 항일혁명전쟁은 더욱 고조되였다.
그때로부터 어느덧 8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이 장구한 로정에서 보천보의 홰불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천만군민의 심장속에 백두의 넋과 기상,민족자존의 정신력이 세차게 살아 높뛰게 한 자양분이였고 혁명의 년대마다 반제투쟁의 전초선에서 련전련승을 떨치며 그 어떤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강국건설의 한길로 줄기차게 전진하는 주체조선의 본때를 힘있게 과시할수 있게 한 정신적원천이였다.
중첩되는 최악의 역경을 박차고 우리의 힘,우리 식으로 이 땅우에 사회주의강국을 건설해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백두의 혁명전통은 더없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로 된다.
보천보에 타오른 홰불은 지나간 력사가 아닌 조선의 영원한 승리의 상징이다.
조선인민의 불굴의 기상과 영웅적기개를 온 세상에 과시한 보천보의 불길은 만리마속도창조운동에 떨쳐나선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필승의 신념과 의지를 더욱 굳게 새겨주며 자랑찬 기적과 비약의 불길이 되여 오늘도 이 땅우에 세차게 타번지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혁명사상이 있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세련된 령도가 있으며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일심의 대오가 있기에 보천보의 홰불은 영웅조선의 백승의 력사와 더불어 영원히 타오를것이다.

본사기자 신 혁 철